백가흠은 소설은 섬세하게 고통스럽다. 마치 대바늘을 손톱 밑으로 찔러 넣기 전의 그 찰나의 두려움이 묻어진다.

 가장 첫번째로 풀어 내는 이야기는 '에어컨'이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성욕구가 있다. 도덕적으로 욕구가 분출된다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진단하진 않지만, 그것을 어떻게 분출해 내느냐에 따라 법의 규제를 받게 될 수도 있다. 퇴폐 업소들이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번식하는 것은 '본능' 이라는 욕구는 직접적인 도려냄같은 수술로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퇴폐 마싸지나 혹은 텐프로 등 여성들은 쉽고 간단하게 돈을 벌기 위해 모여 들고 남성들은 그런 여성들과의 만남으로 스스로의 분출구를 찾아 드나든다. '돈'이라는 값어치를 지불하고 전혀 꺼림칙하지 않게 생각하는게 다반사다.
 에어컨이 필요하지만 전혀 구매 의사가 없는 옥탑방 남자에게 온 에어컨 택배는 본능이 찾아 왔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널부러져 있다가도 내 의사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그런 예의 없는 손님같이 말이다. 그 욕구를 배달하러 온 남자는 일단 두려움 뒤에 감추고 등장한다. 남자들은 일단 의심을 갖는다. 철저하게.  

「 그러지 말고 이미 배달 온 건데 에어컨 하나 안 들여놓으시겟어요?
에어컨 팔러 오신 거예요? 그럼 그렇다고 처음부터 얘길 하셨어야죠.
나는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남자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나서 철저히 공략할 수 있고 방어할 수 있다고 믿는 남자는 직접적인 '여성'. 본능의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흔들리게 된다. 아무래도 가까이 있는 실현가능한 현실과 생각만으로 치뤄내는 과정은 의미의 차이가 크다. 스탠드에어컨을 등에 지고 다세대주택 오층 옥상까지 걸어 올라온 여자는 땀에 젖어 있었고, 근육은 팽창해 있었다. 적절한 섹스어필이 가능한 상황이다. 오히려 그런 것을 유도했다고 볼 수 있다. 남자의 사고를 마비시키기 위한 철저한 계획이었다고 본다. 현실에서 남성들은 일명 삐끼들에게 거부감을 갖는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사진이나 혹은 현혹되는 말들은 그들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돈'과 '섹스'의 부적절한 거래를 위해 뱀의 혀들이 남자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결국 여자와의 짧은 관계를 갖고 에어컨은 남자의 소유가 된다. 93만원의 값어치를 치룬셈이다.  본능은 남자를 유혹하고 미안함을 무기로 에어컨을 팔아 치운다. 그리고 남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든 죗값으로 그 돈을 지불하게 된다. 결국 삼일 뒤에 절도 된 물건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삼일간의 꿈같은 시간들은 남자를 떠나간다. 그리고 다시 찌는 듯한 더위를 맞이하는 옥탑방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에어컨을 팔러 누군가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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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가느다란 금발에다 유행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낡은 스웨터 차림의 남자.
사람 만나기를 싫어해 상 받는 것도 마다하고, 인터뷰도 거절해 버리는 기이한 은둔자.
이 사람이 바로 전 세계 매스컴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이다.
쥐스킨트는 1949년 뮌헨에서 태어나 암바흐에서 성장했고 뮌헨 대학과 엑 상 프로방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젊은 시절부터 여러 편의 단편을 썼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한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남성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가 <희곡이자 문학 작품으로서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 이라는 극찬을 받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 냄새에 관한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주인공 그르누이가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향수」, 조나단 노엘이라는 한 경비원의 내면 세계를 심도 있게 묘사한 「비둘기」「깊이에의 강요」
등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독일의 영화 감독 헬무트 디틀과 함께 쓴 시나리오로 영화화되어 1966년 독일 시나리오 상을 수상하였다.



조력자의 혀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안다. 그래서 끊임없이 돌진하고 뻗어나가서 완벽에 닿으려 하는걸까. 언제나 목마르고 갈구하는 목표가 있어서 인생이 심심하지 않다. 중심을 잃어버리고 타이밍을 뺏겨버리면 세상의 매치기에 내동댕이 쳐질 수 있다. 지금 여기에 세상이 아닌 조력자에게 중심을 뺏겨버린  여인이 등장한다.

「당신의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프로야구 선수가 두번의 타석에 들어섰다. 한번은 삼진을 한번은 홈런을 쳤다. 삼진을 당했을 때 옆에 있던 조력자(타격 코치)는 흐트러진 타격폼을 지적했고, 홈런을 쳤을 때 완벽한 팔로 스윙을 칭찬하며 공을 멀리 보낼 수 있었다 한다. 하지만 정작 선수 자신이 느끼기엔 타격폼은 같았다. 하지만 노리고 있던 구종의 차이와 볼 카운트 싸움에서 다양한 변수가 있었고 그 미세한 차이로 인해 한번은 삼진 또 한번은 홈런이 된 이유라고 느꼈다. 이 선수에게 소설 속 평론가의 말을 인용해 보면 이렇게 표현 될 수 있다.

「당신의 타격은 재능이 있고 힘이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자신감이 부족합니다.」

 조력자의 입장은 유리하다. 조언을 해 준 후, 위풍당당한 선수가 되어 프로 세계의 진정한 별이 된다면 조력자는 자신의 조언이 말이 옳았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혹은 2군으로 강등 되거나 미미한 성적만을 남긴 채 은퇴한다면 '그 선수는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어' 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조력자가 빠질 딜레마는 없는 것이다. 언제나 승리할 수 밖에 없는 공식이 성립 된다. 

「거듭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사람이 상황을 이겨 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을 다 같이 지켜보아야 하다니, 이것은 남아 있는 우리모두에게 또 한번 충격적인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관심과 예술적인 분야에서의 사려 깊은 동반이 무제되는 경우에는, 국가 차원의 장려와 개인의 의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결국 비극적 종말의 씨앗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 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력자의 조언은 귀담에 들으면서도 너무 연연해 하지 않아야 하는게 아닐까. 그 조언이 나를 망친다면 과감히 버릴 줄 도 알아야 할 것이다.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러던 젊은 여인은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더니 조력자는 그 일을 계기로 깊이를 인정해줬다. 작품의 깊이라는 건 측정할 수 없다. 젊은 여인은 자신의 생명과 작품의 깊이를 바꾼게 되었다.



뚫린 귀로 듣고 뚫린 입으로 지껄이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한가지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음성은 없는 글씨로만 공유하는데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면서 다양한 결과물이 생성되고 왜곡 된다. 그리고 치명적인 가시들을 내뱉게 되고 과반수 투표에 익숙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한가지 의견을 내놓으면 그곳으로 몰빵하는 그런 파렴치한 행동들이 난무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비평을 외우고나 있는 듯이 그녀의 그림들이 첫눈에 일깨우는 호감과 많은 재능에 관해 연신 말을 꺼냈다. 그러나 주의 깊게 귀기울여 들으면 뒤편에서 나지막이 주고받는 소리와 등을 돌리고 잇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젊은 여인은 들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깊이가 없어요. 사실이에요. 나쁘지는 않은데,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어요."」


 평론가의 평론이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하나로 압축시켜 버렸다. 그리고 사람들고 그 곳으로 귀결되어 간다. 이 소설이 꽤 예전에 쓰여졌다고 한다면 지금도 변함없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은 만나서 하던 것이 이제 만나지 않아도 할 수 있게 된 인터넷 공간으로 위치의 이동이 생긴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 보다는 그 분야의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는 걸 즐기게 된 것이다. 그래야 더 있어보이고 더 잘나가 보인고, 아마추어지만 더 전문적으로 보일테니깐 말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논쟁은 끊임이 없다. 그러다 보호되야 하는 신변이 유출이 된다거나 옛 과거까지 들춰내는 상황들을 보면 너무 잔혹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문제는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타인의 생각이 옳던 옳지 않던 다른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도 되는 사실을 굳이 깍아내리고 깍아 내려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무조건 강조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우리는 사람이면 당연하게 동등하게 가춰진 가치를 무시하는게 된다. 그래서 깊이가 없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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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nike sko 2013.04.22 20:11

    지독한 네게 의미를 준 너의 사랑

  2. addr | edit/del | reply burberry on sale 2013.04.26 17:20

    마는 대중 문화를 대표하고

  3. addr | edit/del | reply cheap toms 2013.04.27 05:00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되지만, 기쁨을 나누면 배가된다.Topics related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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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addr | edit/del | reply monster beats 2013.05.15 04:05

    괜히 무심한척 하는 내가 바보 같아


귀뚜라미가 온다

 노란 책 표지에서 오는 상큼함과 다른 책 내용은 가히 섬뜩하다. 단편소설들을 묶어 놓은 '귀뚜라미가 온다' 그 중에 표지 제목을 차지하고 있는 단편을 보려 한다. 비상식적인 인물과 상식적인 인물들을 2:2로 매치 시켜 읽는 사람에게 불편한 마음으로 읽게 만든다. 다리에 힘이 풀려져 버릴 만큼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빠져보자.
 소설의 무대인 능도는 정말 현실에 존재하리만큼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꼼꼼하게 찾아 보지 않는 독자라면 그 곳은 분명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저하게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의 공간이라는 걸 알고 넘어가자. 그리고 '귀뚜라미' 라는 태풍도 완벽하게 설치 된 장치였다. 
 등장하는 남자는 띠 동갑도 넘는 여자와의 섹스를 하면서 '엄마'을 찾는다. 엄마와 결여가 등장하면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오이디푸스' 식상하고 지겨운. 

「여자의 비대한 살 때문에 여러 체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남자가 무릎을 꿇고 여자의 엉덩이 앞에 선다.
"엄마야, 어무이요."
 남자는 육중한 엉덩이와 벌겋게 벌어진 여자의 음부를 보며 손으로 자신의 것을 애무한다.」 

「”지는 단 한 번도 어무이가 있어본 적이 없어서예. 잘 모르지만예, 시벌, 이건 말이 안된다 안합니까? 전번번에도예, 지랑 약속 했었지예. 또 그라면 지한테 매 맞기로 약속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

 소설 속에 틈틈이 찾을 수 있는 등장인물 '남자'의 결여가 보인다. 엄마와 가족에 대한 결여가 그를 더욱 바람횟집 여자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된다. 여자와의 사랑이 아닌 가족이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부인이 생기고 새깡이(아이) 생기는 게 남자의 목표다. 능도의 바람횟집은 사회 공동체의 규율이 존재하는 범위를 벗어나 그저 원초적인 사람간의 본능을 보여주고 있다.

 죽지 못해 산다, 늙으면 죽어야지 등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한탄스러운 상황에 간혹 쓰시는 반어법이 아닐까 한다. 달구 노모는 오히려 더 지독하게 살고 싶어한다. 오히려 달구보다 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박혀 있다. 달구와 달구 노모 사이의 미세한 틈은 점점 벌어지고 균열되어 가고 있다. 

「”그리 또 도망가나? 함 가바라. 애비도 때려 쥑인 놈이 어무이가 별거가. 다 쥑이뿔 기다."」

「달구의 늙은 엄마는 좁은 틈으로 몸을 완전히 숨긴다. 머리를 벽에 붙이고 무릎을 꿇은 자세이다. 달구는 돌아오지 않는다. 달구 노모가 빠진 앞니 사이로 긴 한숨을 내뱉는다. 내 자몬인 기아, 모된 내 맘을 용와닌이 아나뿐 기아. 노모는 좁은 틈에서 엎드려 바람 새는 소리로 중얼거린다.」

 달구가 귀뚜라미가 구름 속에 달을 품고 오는 중에 달구 노모를 때리며 하는 말이다. 둘이 되기 전엔 아버지가 있었고, 그를 달구가 때려 죽였다. 그들이 능도로 오게 된 이유가 된다. 도망쳐야 했던 달구와 달구 노모는 부모 자식간의 사이가 아니라 범죄에 같이 동반 되었다라는 동반자 의식이 강하다. 나는 이렇게 가정해 볼 수 있다. 달구 노모를 괴롭히던 아버지를 때려 죽이고 싶은 만큼 달구의 미움은 쌓여만 있다. 결국 그것이 폭발하고 달구의 그런 행동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노모가 죄의식을 느낀다. 그래서 달구에게 맞으면서도 본성은 착한 아이다라고 말 하는 것이다. 결국 달구는 달구 아버지와 같은 놈이 되어 가는 것이다. 

 남자와 달구의 특징은 '결여'다. 하지만 각자의 결여의 분류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와 반대로 등장하는 여자와 달구 노모, 즉 여성이란 주체들은 소설 속에선 객체가 되어 버린다. 묵묵히 남자들의 행동을 받아 들이기만 해야 하는 입장인 인 것이다. 결국 주체가 되지 못한 여성들은 바닷물에 깨끗이 사라져 버린다. 달구 노모는 구속에 무릎을 꿇은 채로 여자는 은빛 전어 떼를 따라 바다로 향해 간다. 그들의 삶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 시작인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 
 2대2, 남과 여의 구도 상황이라고 스스로 정한 뜻에 따르면 결국 모든 것들은 사라져 버렸다. 남은 건 없고 사라진 것만 있다. 나는 여기서 소설을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고 싶다. 귀뚜라미가 객체들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상황들을 해결해 줬다고 본다. 마지막 대목에서 덜 슬플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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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ralph lauren pas cher 2013.04.28 05:08

    하지만 알면서도 너의 모든 것이 욕심이나

  2. addr | edit/del | reply hogan outlet 2013.04.28 07:37

    대한 설문조사를 통하여 한국어를 얼마나

 누가 대학을 그만뒀어?
 근데 그게 뭐 그렇게 큰 이슈가 된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것이다. 김예슬학생의 자퇴, 그건 그 학생만의 자퇴로만 끝나지 않았다.  

 트윗을 통해 김예슬학생(?)  책 이 출판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예슬양이라고 부르겠다 이제.
자퇴를 한지 이제 겨우 한달 만에 그 동안 책 한 권을 썼어?
대단한데! 라고 박수 쳐주고 싶었지만, 뭔가 미심쩍은. 일단 의심하고 보는
이놈의  몹쓸 성격.
하지만, 다음 날 교보문고에 가보니 떡! 하니 발간이 되어있었다. 
사실 떡! 하니라고 하기에도 뭐한 게, 한방에 못 찾았어 점원에게 물어봤더니
구석진 자리에 얇고 작은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김예슬양의 대자보 3장을 읽고 가슴이 뭉클했던 건, 나도 또한 같은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사는데 거침이 없었다. 쭈륵쭈륵 읽어 내려갔다. 대자보에서 다 하지 못했던
김예슬양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중간에 툭툭 끊켰다. 집중이. 잘.
경영학과 출신이라 그럴까? 제품에 비유하고 각종 다양한 사물에 비유하면서 
많은 비유법을 활용해 이해를 돕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그만 내용이 딱딱해져서 
내 집중력을 앗아갔다. 


한번 내려 놓고 두 번 내려 놓고, 
내가 무식하고 멍청해서 멋지게 학교를 나온 김예슬양의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걸까? 다시 책을 덮고 고민을 해본다. 
김예슬양에겐 미안하지만, 나에겐 책이 어려웠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건지.. 

어떻게 보면 그저 김예슬양의 자서전 같은 느낌. 


만약에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책을 읽고 많은 생각에 잠겨서
자신만의 뭉클한 무언 갈 찾아가고 그래서 사회가 변했으면 했다는 게 의도였다면, 책이 나오긴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김예슬양. 나는 당신처럼 그렇게 행동하는 용기는 가지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속에서 딱딱하게 슬퍼할 뿐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행동을 옮기기 위해 움츠려 있는 거라고 나를 위로해 봅니다.

 당신의 용기 있는 행동에 정말 무한한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하지 만, 3장의 대자보 보다 덜한 감동을 준 이 책엔 침을 뱉어주고 싶네요.





나의 감동을 덜하게 해버리고 말았으니깐요.





나의 감동을 덜하게 해버리고 말았으니깐요.





Posted by  MaGaTon(lkiri4@gmail.com)
twitter  @lk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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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plancha ghd 2013.04.27 22:50

    전통발효식품으로 쌀 위주인 한국